일본 이야기/일본 취업 이야기

일본 취업 이야기 1. 학벌, 출신 대학의 영향력

BD2Mat 2024. 6. 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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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이야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는 일본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인턴 등 일본 취준(就活) 과정을 체험해 본 적도 있고 친구 중에서 실제로 일본 유학을 가서 취업한 친구도 있고 학부 친구 중에서 일본 취준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교환 간 대학에서 사귄 일본인 친구들의 썰도 들었고요.

 

이걸 바탕으로 일본 취업 및 그 취준 과정, 즉 취활(就職活動・就活, 슈카츠, 취업준비/취준의 일본어)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상당 부분은 간접 경험한 이야기이므로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최대한 일본 잡지 기사, 사이트, 블로그 글 등으로 보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당히 장문이며, 문과 취업이 기준이므로 이과, 특히 석사 후 취업하는 경우와는 꽤 다를 수 있습니다.

1. 일본은 취업 시 학벌은 중요한가

 

일본 취활을 경험해 보기 전 기준, 제가 가장 궁금해 했던 부분인데 이건 답이 명확합니다.

 

네, 대놓고 봅니다. 애초에 일본은 블라인드 채용이 아닙니다.

 

우리가 처음 서류지원하듯이 일본은 최초 지원시 ES(エントリーシート, 엔트리 시트)라는 걸 작성해서 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력서+자기소개서를 간략화해놓은 형태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력서+자기소개 4~500자, 기업별 문항 400~800자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력서란에 출신대학교를 작성해야 하므로 출신 대학교가 바로 드러납니다.

 

여기까지는 뭐 우리나라 공기업처럼 확실히 블라인드 하는 곳들도 서류제출 시에는 학교명은 그대로 써서 내는 곳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일본은 걍 면접에서 자기 대학을 밝힙니다.

 

일본에서 취준할 때 기본적으로 가입하는 사이트가 마이나비(マイナビ)와 리쿠나비(リクナビ)입니다. 한국판 사람인/잡코리아/인크루트인데 취업 영향력은 일본 내에서 이 두 사이트가 절대적이라고 봐도 됩니다. 취업 전 인턴, 취업 지원 등을 거의 이 두 사이트에서 하니까요.

 

이 두 사이트에서는 입사 면접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셔야 한다'라고 기본 가이드를 작성해 놨는데

 

마이나비(https://shinsotsu.mynavi-agent.jp/knowhow/article/entering-leaving.html)

 

입실방법
1. 문을 노크한다

문은 3회 가볍게 노크합니다. '들어오세요(どうぞ・부디)'라고 말하면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고 문을 엽니다. 

2.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방에 들어갔으면 문쪽을 향한 다음 문을 닫습니다. 몸은 정면으로 하고 손만 뒤로 해서 문을 닫지 않도록 신경 씁시다

3. 면접관을 향해 인사
문을 닫았다면 면접관을 향한 채로 30도 각도로 인사를 합니다. 인사하기 전에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해도 OK입니다.

4. 의자의 옆에 서서 '학교명과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OO대학 OO학부의 OO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이후 45도 각도로 인사를 합니다. 이때 자기소개와 인사는 동시에 하지 않도록 신경 씁시다
인사 후 의자 옆에 정자세로 섭니다.

5. 착석
'앉아주세요 (どうぞ・부디) '라고 말하면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가볍게 인사(15도 정도) 한 후 앉는다. 가방이 있다면 의자의 옆이나 의자 다리에 세워놓습니다. 

 

 

리쿠나비(https://job.rikunabi.com/contents/interview/8084/)

 

3. 입실
노크는 느긋하게 합시다. '네,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문을 열고, 입실한 다음에는 문 쪽으로 몸을 돌려서 문을 조용히 닫읍시다. 닫은 다음에는 면접담당자를 향해 서서 문의 앞에서 '실례하겠습니다'라고 가볍게 인사를 한 다음 의자의 좌측이나 뒤에 서서 'OO대학의 XXXX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이후 면접 담당자가 '앉아주세요'라고 권하면 '네,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착석합시다

 

 

네, 둘 다 대놓고 대학명을 면접 때 말하도록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가이드 다 2025-2026 취활생 용입니다. 즉 저게 지금도 국룰이라는 거죠.

 

그런데 입사 면접 과정에서 대놓고 대학명 밝히고 시작하는 데 취업할 때 대학교 학벌 영향력이 없을 까요? 택도 없는 소리죠.

 

 

 

 

 

 

2. 일본에서 취업 시 학벌을 보는 이유

 

일본 취업에서 학벌을 반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1) 많은 사람을 1년에 1번 뽑는 공채 시스템(新卒一括採用)이며

2) 일본은 학점도 거의 반영 안 하고 우리나라 인적성 같은 시험도 보지 않거나 아주 기초적인 수준(웹테스트, ウェブテスト)만 보기 때문에 학생 수준을 측정하는 기준이 학벌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며

3)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 내의 머리 수준이면 그다음부터는 회사 업무 적응성, 사회성 등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년에 2회, 즉 상반기, 하반기 공채가 일반화되어있지만 일본은 1년에 1회 선발하는 신졸일괄채용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대규모 일괄 채용의 특징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분류해서 걸러내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에는 시험을 따로 돈 들여 시행해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이 1차적인 분류는 보통 학벌을 보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우수한 대학을 나온 학생=머리 좋은 학생'이니까요.

 

그런데 1) 학벌이 우수하다고 해서 반드시 업무 능력이 우수한 것은 아니다 2) 설령 그게 대체적으로 맞다고는 해도 대놓고 '학벌 좋은 순으로 뽑겠다'라고 하면 사회적 비판이 크다라는 점 때문에 적성시험을 도입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랑 일본이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유이하게 취업 과정에서 적성시험을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규모 공채문화가 있고, 선진국이라 학벌 채용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비교적 강하면서도, 해당 국가의 기업들은 시험 볼 여유정도는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죠. 유럽, 미국은 상시 소규모 채용하기 때문에 회사 알아서 걍 학벌 보거나 아예 안보거나 하는 거고 대규모 공채를 하는 곳이라도 개발도상국이면 걍 학벌 보는 걸로 퉁쳐버리니까요.

 

다만 일본의 경우 웹테스트를 보는 데도 불구하고 학벌도 많이들 보는 편인데 우선 웹테스트의 수준이 그닥 높지 않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머리+최소한의 준비 정도만 해도 넉넉히 붙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적성인 GSAT, NCS는 상당히 빡센 편인데 왜냐하면 이게 실질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걸러내는 도구로서 작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GSAT는 삼성그룹의 인적성시험이고 NCS는 공기업에서 보는데(공기업마다 조금씩 다름) 삼성그룹은 원래 학벌 안 보기로 유명하고 NCS도 공기업이다 보니 굳이 NCS 점수는 낮은 데 학벌 높은 학생을 채용할 이유가 없죠. 그러니까 실제로 좋은 인재를 골라내는 역할을 위 2개는 해내야 하기 때문에 수준이 높고 빡센겁니다.

 

그런데 일본 웹 테스트는 그 역할을 상당 부분 수행하지 못합니다. 저는 인터넷에 올라온 예시문 몇 개 보고 시험 봤는 데 가볍게 붙었고(인턴십 중에서도 웹 테스트 통과를 요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제 고향 지거국 나온 고등학교 친구도 기출문제집 몇 권 풀어보고 지원한 기업 웹 테스트는 다 통과했으니 진짜 기본적인 것만 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웹 테스트 수준이 낮은 이유는 결국 여전히 학벌을 채용과정에서 머리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두고 있으며 또 하나는 학벌을 단순히 머리 판단 기준이 아니라 영업, 인맥의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에 선배들한테 들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명문대 출신 왜 뽑냐고? 영업사원을 뽑는다고 가정해 보자. 대부분 문과 출신이겠지. SKY 출신 직원은 주요 신문 기자, 법조인, 예비 고위 공무원, 주요 대기업 직원이 선후배동기, 친구인데 소위 지잡대 출신 직원은? 대부분 배달 같은 비정규직에 잘 나가면 지방공무원 정도가 선후배동기, 친구일 텐데
출신 대학 빼면 비슷한 스펙이면 '영업사원'으로 누구 뽑을래? 누가 더 영업 잘할까?'

라는 거였죠.

 

이게 일본에는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게, 일본은 여전히 영업의 비중이 큰 편이고 이에 따라 영업사원을 상당히 많이 뽑고(일본 문과가 한국에 비해 비교적 취업이 잘되는 이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업, 즉 일감을 따오거나 자사 제품을 공급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주요 대기업에 아는 지인이 많은 명문대 출신을 채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거죠.

 

그러므로 최소 정도로만 적성시험을 보고 그거 통과한 대상에서 다시 한번 학벌이나 면접으로 컷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적성시험을 온라인으로 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시간제한은 있습니다만 컨닝이나 대리시험 우려가 있는데 대놓고 이렇게 보는 건 결국 적성시험의 채용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거죠.

 

또 아예 늦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류 통과하고 첫 면접 보고 나서 또는 최종 면접까지 다 마치고 적성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그냥 요식행위이거나 진짜 이 것도 통과 못하는 수준인 사람을 거르려고 시험 보는 거죠.

 

게다가 일본 취업은 대학교 학점이나 스펙도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우선 일본 기업은 기본적으로 '우리 인재는 우리가 가르친다'가 기본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신입이 들어오면 우리 업무를 하게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므로 사회에서 뭘 했든 크게 기대를 안 합니다.

 

그래서 초봉이 선진국 중에서도 유난히 적은 편인데 저연차 사원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도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특히 40~50대가 될수록 연봉이 확확 오르는 거고요.

 

그러므로 기업의 연수를 따라올 '기본적인 머리'가 된다면, 조직 융화성, 업무에 대한 적합성 등을 훨씬 많이 봅니다. 그래서 한국에 비해 면접이 많은 거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기본적인 머리를 어떻게 측정할 거냐에서 일본 기업들의 답은 기본적으로 '학벌'인 거죠. 

 

'일본 취업에서 대학교 성적이나 스펙보다 학력(学歴/한국의 학벌과 용례가 비슷)을 더 보는 이유요? 음,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어차피 대학생 때는 다들 단위(이수학점)만 따고 놀잖아요. 포텐셜을 보려면 대학생 때 이룬 엄청 특별한 이력이 있는 게 아니면 다들 노는 대학생 때 뭐 잘한 것보다는 다들 공부하는 중고등학교 때 이룬 성과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학력을 보는 거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기본 머리가 되면 우리 기업에 가르쳐주는 거 잘 따라가고 사회성 좋은 게 중요하지 심리학, 정치학 전공 성적 높게 맞은 게 중요할까요? 우린 머리 좋고 사회성 좋은 직원을 뽑으려고 하는 거지 심리학자, 정치학자를 뽑는 게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일본에서 인턴 할 때 현직 5대 상사 직원 분에게 들었습니다. 일본 기업이 어떤 기준에서 사원을 뽑고 싶어 하는지 잘 대변해 주는 말인 것 같아요.

 

 

 

 

 

NHK 뉴스에서 다룬 한국 수능과 SKY 대입경쟁 일러스트

3. 일본 취업 시 '한국' 학벌은 영향이 있는가

 

일본 현지 취업 기준으로는 아뇨. 한국 학벌 영향력은 거의 없습니다. SKY 정도나 알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일본 현지 기준이면 그나마 서울대면 많이들 알아서 그나마 이득, 연고대는 경우에 따라 담당자가 알면 복불복 이득인 수준입니다. 한국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이라던가 하면 이게 좀 더 확실해지는 정도죠.

 

서울대의 경우 한국 대학의 대표하면 서울대인 것도 있고 일본도 도쿄대가 최고대학이니까 한국의 수도명이 붙은 국립대학교인 서울대가 최고대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서 유명하므로 대체적으로 이득입니다. 조금이라도 우수 인재라고 생각하죠. 참고로 '예전에 경성제대였어서 대우해 준다'라는 의견도 있던데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50~60년대 정도면 모를까 지금도 경성제대 운운을 신경 쓰지도 않거니와 서울대 전신이 경성제대인 것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연고대까지는 그래도 위 일러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한국 소식 다루는 일본 방송에도 간간이 나오기도 하고 연고대는 와세다, 게이오와 활발히 교환학생, 학회/동아리 교류가 이루어지는 편이라 해당 학교 학생이면 대체적으로 연고대를 알고 있으므로 대기업 인사부라면 '들어는 본 듯?' 하면서 나름 다른 한국대보다는 우대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정리하면 SKY 아래면 학벌 이득 생각은 안 하는 게 편합니다. 연고대도 잘 모르는 경우가 꽤 있는 판이라.

 

다만, 당연하게도 한국에서 채용을 하는 기업의 경우 한국 학벌을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Career In Japan 같은 마이나비가 한국에서 벌이는 취업박람회에 참여하는 기업의 경우 한국 학벌에 대한 정보도 있고 상당 부분 반영도 합니다. 

 

한국에서 채용하는 일본 기업의 일본 본사에 지원하는 경우, 예를 들어 2023년 Career In Japan의 경우 소니 그룹이 참여했는데 소니 그룹을 일본 마이나비 등을 통해 지원하는 경우에 한국 학벌을 반영하는지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반영 안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만 채용할 때는 당연히 한국 학벌이 기준으로 쓰일 수 있지만 일본에서 일본대학 나온 학생과 한국에서 한국대학 나온 학생을 학벌로 1대 1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한국 서울대 입학이 일본 메이지나 아오야마가쿠인 입학보다 훨씬 빡세지만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위에 말한 이유로 메이지대, 아오야마대 출신을 선호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애초에 한국 학벌 정보는 지사 채용을 관리하는 담당자 정도나 알지 해당 내용을 인사부 전체가 공유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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